라이프오브더칠드런과 하루 6시간 꼬박 4년, 2년을 펀드레이저이자 거리 캠페이너로 함께한 한상순 님과 오미경 님.
두 분은 앞으로 거리모금을 넘어 사업장을 돌며(B2B) 펀드레이징을 하기 위해 그로웨이에서 지난 3주 동안 코칭을 받았습니다.
뼈를 묻을 때까지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이 성장하는 동안 함께 하고 싶다는 한상순 님과 오미경 님. 회사원과 주부를 거치고 펀드레이저 혹은 캠페이너로 제2막의 인생을 사는 두 여성분의 이야기를 공유해 드립니다~

한상수님(왼쪽)과 오미경님(오른쪽)
Q.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가.
한: 하루에 9시 반부터 4시까지 일하고 있다. 점심시간 따로 쉬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 하고 있다.
Q. 오래 서서 일하는데 힘들지 않나.
오: 간이 의자를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앉았다가 섰다가 그렇게 일하고 있다.
Q.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고 한데 괜찮은가.
오: 가장 힘들다. 겨울에 밖에서 일하다가 차에 들어가면 얼굴이 빨개진다. '생태 됐다, 동태 됐다'라고 한다. 여름에 파라솔을 펴놓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해를 다 가려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덥다.
Q. 그런데 어떻게 이 일을 꾸준히 하고 있나.
오: 사명감도 있고, 일이 즐겁다.
Q. 어떤 부분이 즐거운가.
오: 일할 때, 힘든 일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니 웃게 되고 '살아있구나'를 느낀다. 가정주부로 혼자 집에 있으니 우울했다. 또 이 일이 순수 봉사는 아니다. 적게라도 돈을 벌고 있다. 보험 영업에 비교하면,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가치가 가장 컸다. 좋은 일을 하니까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해주세요' 말할 수 있으니까 부끄럽지 않다. 후원을 받으면 또 웃으면서 수혜자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다.

거리모금을 하는 오미경님
한: 가끔 후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을 하고 즐거울 때가 있다.
한 후원자는 교회 장로님이라고 하셨다. 로또 복권을 매달 샀는데 양심적으로 찔렸다고 한다. 우리를 만난 그날 '하나님, 3만 원을 복권에 안 쓰고 뭔가 좋은 일에 쓰고 싶습니다'라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저를 딱 만났다. '아,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것 같다. 3만 원을 이제 후원하는 일에 쓰겠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만남이 소중하다.
또 한 번은 중년 남성을 만났다. 아들 하나를 키우셨는데, '아들이 대학만 졸업하면 무거운 짐을 덜겠지' 하셨다. 졸업 후, 아들이 직장을 들어갔는데 다단계였다. 몇 개월 후에 빚 독촉 고지서가 자꾸 오면서 아들이 다단계에서 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쌓인 빚을 아버님이 퇴직금으로 다 갚아주었다. 그 후에 아들이 결혼하면 괜찮겠지 했는데, 자녀를 낳았는데 아기가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인큐베이터 이용비가 하루만 해도 매우 많은 돈이 들어간다. 결국 사모님과 집 처분을 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아이를 위한 수술비를 마련해주셨다. 그래서 어르신이 아내에게 '당신은 자녀 집으로 들어가라. 나는 퇴임하고 경비를 서겠다. 경비를 서니까 거기서 먹고 자겠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 어려운 환경인데도 만 원을 후원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울게 되었다.
이런 분들을 만나기 때문에 힘들지만, 나보다 어려운 분들이 후원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하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올 3월에 라이프오브더칠드런에서 케냐로 봉사를 다녀왔다. 유튜브나 워크숍, 총회 때마다 돕는 아이들의 영상과 사진을 봤지만, 실제로 보고 싶었다. 가서 아이들의 학교와 유치원을 봤다. 아이들이 신발도 못 신고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국내에서는 그룹홈을 통해 힘든 가정의 아이가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직접 그런 일을 할 수 없지만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통해서 함께 큰일을 할 수 있는 게 감사하다.
내 두 눈으로 보고 오니, '이렇게 모금을 통해서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구나. 값지게 쓰이는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따뜻한 후원금을 통해서 아이들을 살리고 아이들에게 꿈을 준다는 믿음이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지식이 쌓이고 변화되어 훌륭한 지도자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하루에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계속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피부도 엉망이 되고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든 마음도 생길 때가 있지만, 후원자를 한 분 한 분 만날 때 보람되다.

Q. 올 3월 해외 사업장을 간 게 처음인가. 그 이후 사명감이 많이 바뀌었나.
오: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케냐 사업장 지역 아이들이 신발을 안 신는다. 티브이에서 보며 '신발을 안 신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가보니 그곳은 사막이다. 나뭇가지들이 다 말라서 길고 두껍다. 그런 가시가 된 가지들은 타이어도 구멍을 낸다. 나도 신발을 신고 차에서 내렸는데, 신발 옆으로 가시가 찔려 박히게 되었다. 그런 길을 아기들이 맨발로 다닌다. 그래서 상처가 나고 상처에 모래와 벼룩이 들어가 병이 심해지면 다리를 절단한다. 아이들의 발바닥이 두껍다. 그런 아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줬다.
교복에 맞는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나눠줘야 했다. 구두를 처음에 신을 때 아플 것이다. 그런데 또 양말이 없다. 분명 처음 신는 구두라 아플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신발을 신겨주는데 너무 행복해하는 걸 잊을 수 없다. 버리라고 그래도 구두 상표도 다 모은다.
신발을 신겨주고 있는데 주변에서 아기를 안고 엄마들이 스멀스멀 나왔다. 주변에 집이 하나도 없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이다. 잔가지로 된 나무 덤불 같은 곳에서 나왔다. 우리나라 강아지, 고양이보다 못한 환경에서 산다.
우린 그걸 말을 듣고 눈으로 봤다. 그 후 모금을 하는데 더 절실하게 정말 애원을 하게 됐다. 나라를 잘못 태어나서 짐승보다 못한 환경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안타깝고 나의 운에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살다 보면, 가끔 나보다 나은 사람들과 비교하며 절망하는데, 다녀오니까 '나 정말 행복하구나. 정말 감사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든다. 모두 아프리카에 다들 한 번씩 가봤으면 좋겠다.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들이 예쁘다. 새벽 6시부터 강행군으로 사업장의 학교들을 다 돌았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먹여주고 학용품을 나눠줬다. 아이들을 처음에 볼 때는 눈물이 났는데 나중에 아이들로부터 힐링을 얻었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교감하고 나눌 때 행복감이 느껴졌다. 행복해서 그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 아이들이 더 그립고 어떻게 성장했을까 보고 싶고 일과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Q. 단체를 바꾸지 않고 계속 함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장점은 무엇인가.
오: 이 일을 여기서 처음 시작했다. 고향 같다. 사원들의 분위기가 가족처럼 따뜻하다. 다들 둥글둥글하고 정이 많아 좋다.
한: 의리를 지키고 싶다. 여기서 배웠기 때문이다. 권호경 이사장님 같은 경우는 정직한 NGO를 만들고 싶은 게 목적이시다. 후원금을 정직하게 사용하고 아이들을 도와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요즘 매스컴에서 안 좋게 후원금이 쓰이는 사례가 나오는데, 이사장님부터 본부장님의 성향을 4년을 함께 했으니 다 안다. 믿어진다. 다른 곳에서 더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옮기고 싶지 않다. 우리가 익힌 기술을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위해 쓰고 싶다. 함께 더 크게 성장하고 싶다. 앞으로 밑에 후배들이 들어오면 이런 마인드로 교육하고 싶다. 단체를 통해 더 정직하게 더 많은 아이를 후원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단체로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오: 같이 크고 싶다. 끝까지 같이 하고 싶다.
Q. 인하우스의 장점 같다. 애사심도 있고 어떻게 단체가 활동하는지도 직접 볼 수 있고.
한: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국내 그룹홈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이를 이모님 집에 맡겨졌는데, 이모가 성추행하여 아이가 얼굴이 완전히 우울감에 매우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만나게 되어 그룹홈에서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기고, 아이의 표정이 바뀐 걸 보고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Q. B2B (사업장 방문 모금)을 일주일 동안 한 소감은 어떤가.
한: 거리보다 힘들다. 거리 모금은 앉아서 '서명해주고 가세요.' 이렇게 부른다. 안 할 분들은 그냥 지나가지만, '뭔데요' 하는 분에게 사업을 설명한다. B2B는 직접 찾아가는 거라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자꾸 자신감이 떨어진다. 자꾸 거절당하니 두렵다.
Q. 힘들지만 계속 B2B를 도전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거리 모금은 장소 선정에 있어 요즘 제한이 조금 있다. B2B도 춥고 계속 걸어야 해서 다리도 아프지만, 비 올 때나 추운 날씨에 거리모금을 대신 해서 할 수 있다. 이런 장단점 때문에 거리모금과 B2B를 병행할 계획이다.
Q. 그로웨이와 함께한 교육 및 코칭은 어땠나.
한: 추대영 대표님을 만나면 부족한 것들 코칭 해주신다. 오늘도 만나서 우리의 부족한 점들을 점검하니까 찔리는 게 많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으시니까 부족한 부분을 잘 집어주신다. 또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을 끌어주신다. 낮아진 자존감도 올려주시고 다시 또 해보리라는 다짐이 생긴다.
Q. 앞으로의 소망은 무엇인가.
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이 일을 하고 싶다. 많은 분이 해주시지만 그럼에도 경기가 좋아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열렸으면 한다. 2년 전 모금할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점점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미 많은 분이 하셔서 포화상태 같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이 성장하니, 이어져서 꾸준하게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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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여성에게 새 일을 도전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장벽을 넘고, 또 온 종일 밖에서 일해야 하며 거절감을 이겨내야 하는 일을 2년, 4년 꾸준히 하는 것은 더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쉴 수 없다는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한상순 님과 오미경 님. 그로웨이는 두 분을 마주하게 되어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 홈페이지
https://lifeofthechildren.org/
라이프오브더칠드런과 하루 6시간 꼬박 4년, 2년을 펀드레이저이자 거리 캠페이너로 함께한 한상순 님과 오미경 님.
두 분은 앞으로 거리모금을 넘어 사업장을 돌며(B2B) 펀드레이징을 하기 위해 그로웨이에서 지난 3주 동안 코칭을 받았습니다.
뼈를 묻을 때까지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이 성장하는 동안 함께 하고 싶다는 한상순 님과 오미경 님. 회사원과 주부를 거치고 펀드레이저 혹은 캠페이너로 제2막의 인생을 사는 두 여성분의 이야기를 공유해 드립니다~
한상수님(왼쪽)과 오미경님(오른쪽)
Q.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가.
한: 하루에 9시 반부터 4시까지 일하고 있다. 점심시간 따로 쉬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 하고 있다.
Q. 오래 서서 일하는데 힘들지 않나.
오: 간이 의자를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앉았다가 섰다가 그렇게 일하고 있다.
Q.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고 한데 괜찮은가.
오: 가장 힘들다. 겨울에 밖에서 일하다가 차에 들어가면 얼굴이 빨개진다. '생태 됐다, 동태 됐다'라고 한다. 여름에 파라솔을 펴놓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해를 다 가려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덥다.
Q. 그런데 어떻게 이 일을 꾸준히 하고 있나.
오: 사명감도 있고, 일이 즐겁다.
Q. 어떤 부분이 즐거운가.
오: 일할 때, 힘든 일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니 웃게 되고 '살아있구나'를 느낀다. 가정주부로 혼자 집에 있으니 우울했다. 또 이 일이 순수 봉사는 아니다. 적게라도 돈을 벌고 있다. 보험 영업에 비교하면,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가치가 가장 컸다. 좋은 일을 하니까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해주세요' 말할 수 있으니까 부끄럽지 않다. 후원을 받으면 또 웃으면서 수혜자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다.
거리모금을 하는 오미경님
한: 가끔 후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을 하고 즐거울 때가 있다.
한 후원자는 교회 장로님이라고 하셨다. 로또 복권을 매달 샀는데 양심적으로 찔렸다고 한다. 우리를 만난 그날 '하나님, 3만 원을 복권에 안 쓰고 뭔가 좋은 일에 쓰고 싶습니다'라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저를 딱 만났다. '아,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것 같다. 3만 원을 이제 후원하는 일에 쓰겠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만남이 소중하다.
또 한 번은 중년 남성을 만났다. 아들 하나를 키우셨는데, '아들이 대학만 졸업하면 무거운 짐을 덜겠지' 하셨다. 졸업 후, 아들이 직장을 들어갔는데 다단계였다. 몇 개월 후에 빚 독촉 고지서가 자꾸 오면서 아들이 다단계에서 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쌓인 빚을 아버님이 퇴직금으로 다 갚아주었다. 그 후에 아들이 결혼하면 괜찮겠지 했는데, 자녀를 낳았는데 아기가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인큐베이터 이용비가 하루만 해도 매우 많은 돈이 들어간다. 결국 사모님과 집 처분을 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아이를 위한 수술비를 마련해주셨다. 그래서 어르신이 아내에게 '당신은 자녀 집으로 들어가라. 나는 퇴임하고 경비를 서겠다. 경비를 서니까 거기서 먹고 자겠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 어려운 환경인데도 만 원을 후원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울게 되었다.
이런 분들을 만나기 때문에 힘들지만, 나보다 어려운 분들이 후원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하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올 3월에 라이프오브더칠드런에서 케냐로 봉사를 다녀왔다. 유튜브나 워크숍, 총회 때마다 돕는 아이들의 영상과 사진을 봤지만, 실제로 보고 싶었다. 가서 아이들의 학교와 유치원을 봤다. 아이들이 신발도 못 신고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국내에서는 그룹홈을 통해 힘든 가정의 아이가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직접 그런 일을 할 수 없지만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통해서 함께 큰일을 할 수 있는 게 감사하다.
내 두 눈으로 보고 오니, '이렇게 모금을 통해서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구나. 값지게 쓰이는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따뜻한 후원금을 통해서 아이들을 살리고 아이들에게 꿈을 준다는 믿음이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지식이 쌓이고 변화되어 훌륭한 지도자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하루에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계속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피부도 엉망이 되고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든 마음도 생길 때가 있지만, 후원자를 한 분 한 분 만날 때 보람되다.
Q. 올 3월 해외 사업장을 간 게 처음인가. 그 이후 사명감이 많이 바뀌었나.
오: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케냐 사업장 지역 아이들이 신발을 안 신는다. 티브이에서 보며 '신발을 안 신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가보니 그곳은 사막이다. 나뭇가지들이 다 말라서 길고 두껍다. 그런 가시가 된 가지들은 타이어도 구멍을 낸다. 나도 신발을 신고 차에서 내렸는데, 신발 옆으로 가시가 찔려 박히게 되었다. 그런 길을 아기들이 맨발로 다닌다. 그래서 상처가 나고 상처에 모래와 벼룩이 들어가 병이 심해지면 다리를 절단한다. 아이들의 발바닥이 두껍다. 그런 아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줬다.
교복에 맞는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나눠줘야 했다. 구두를 처음에 신을 때 아플 것이다. 그런데 또 양말이 없다. 분명 처음 신는 구두라 아플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신발을 신겨주는데 너무 행복해하는 걸 잊을 수 없다. 버리라고 그래도 구두 상표도 다 모은다.
신발을 신겨주고 있는데 주변에서 아기를 안고 엄마들이 스멀스멀 나왔다. 주변에 집이 하나도 없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이다. 잔가지로 된 나무 덤불 같은 곳에서 나왔다. 우리나라 강아지, 고양이보다 못한 환경에서 산다.
우린 그걸 말을 듣고 눈으로 봤다. 그 후 모금을 하는데 더 절실하게 정말 애원을 하게 됐다. 나라를 잘못 태어나서 짐승보다 못한 환경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안타깝고 나의 운에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살다 보면, 가끔 나보다 나은 사람들과 비교하며 절망하는데, 다녀오니까 '나 정말 행복하구나. 정말 감사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든다. 모두 아프리카에 다들 한 번씩 가봤으면 좋겠다.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들이 예쁘다. 새벽 6시부터 강행군으로 사업장의 학교들을 다 돌았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먹여주고 학용품을 나눠줬다. 아이들을 처음에 볼 때는 눈물이 났는데 나중에 아이들로부터 힐링을 얻었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교감하고 나눌 때 행복감이 느껴졌다. 행복해서 그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 아이들이 더 그립고 어떻게 성장했을까 보고 싶고 일과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Q. 단체를 바꾸지 않고 계속 함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장점은 무엇인가.
오: 이 일을 여기서 처음 시작했다. 고향 같다. 사원들의 분위기가 가족처럼 따뜻하다. 다들 둥글둥글하고 정이 많아 좋다.
한: 의리를 지키고 싶다. 여기서 배웠기 때문이다. 권호경 이사장님 같은 경우는 정직한 NGO를 만들고 싶은 게 목적이시다. 후원금을 정직하게 사용하고 아이들을 도와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요즘 매스컴에서 안 좋게 후원금이 쓰이는 사례가 나오는데, 이사장님부터 본부장님의 성향을 4년을 함께 했으니 다 안다. 믿어진다. 다른 곳에서 더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옮기고 싶지 않다. 우리가 익힌 기술을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위해 쓰고 싶다. 함께 더 크게 성장하고 싶다. 앞으로 밑에 후배들이 들어오면 이런 마인드로 교육하고 싶다. 단체를 통해 더 정직하게 더 많은 아이를 후원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단체로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오: 같이 크고 싶다. 끝까지 같이 하고 싶다.
Q. 인하우스의 장점 같다. 애사심도 있고 어떻게 단체가 활동하는지도 직접 볼 수 있고.
한: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국내 그룹홈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이를 이모님 집에 맡겨졌는데, 이모가 성추행하여 아이가 얼굴이 완전히 우울감에 매우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만나게 되어 그룹홈에서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기고, 아이의 표정이 바뀐 걸 보고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Q. B2B (사업장 방문 모금)을 일주일 동안 한 소감은 어떤가.
한: 거리보다 힘들다. 거리 모금은 앉아서 '서명해주고 가세요.' 이렇게 부른다. 안 할 분들은 그냥 지나가지만, '뭔데요' 하는 분에게 사업을 설명한다. B2B는 직접 찾아가는 거라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자꾸 자신감이 떨어진다. 자꾸 거절당하니 두렵다.
Q. 힘들지만 계속 B2B를 도전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거리 모금은 장소 선정에 있어 요즘 제한이 조금 있다. B2B도 춥고 계속 걸어야 해서 다리도 아프지만, 비 올 때나 추운 날씨에 거리모금을 대신 해서 할 수 있다. 이런 장단점 때문에 거리모금과 B2B를 병행할 계획이다.
Q. 그로웨이와 함께한 교육 및 코칭은 어땠나.
한: 추대영 대표님을 만나면 부족한 것들 코칭 해주신다. 오늘도 만나서 우리의 부족한 점들을 점검하니까 찔리는 게 많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으시니까 부족한 부분을 잘 집어주신다. 또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을 끌어주신다. 낮아진 자존감도 올려주시고 다시 또 해보리라는 다짐이 생긴다.
Q. 앞으로의 소망은 무엇인가.
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이 일을 하고 싶다. 많은 분이 해주시지만 그럼에도 경기가 좋아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열렸으면 한다. 2년 전 모금할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점점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미 많은 분이 하셔서 포화상태 같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이 성장하니, 이어져서 꾸준하게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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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여성에게 새 일을 도전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장벽을 넘고, 또 온 종일 밖에서 일해야 하며 거절감을 이겨내야 하는 일을 2년, 4년 꾸준히 하는 것은 더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쉴 수 없다는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한상순 님과 오미경 님. 그로웨이는 두 분을 마주하게 되어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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